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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는 그의 영화들을 통해 양극화된 세계상을 이미지화하거나 체제 전복을 꿈꾸는 집단 혹은 불평등 속에서 탈주하는 개인을 그려내며 불평등한 사회에서 평등 내지는 상생의 의미를 묻고 있다. 6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만들어진 영화 와 도 바로 그러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영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불평등에 대응하는 인간을 다룬다. 불온하게 떠오른 인물들이 불평등에 대응하는 양상의 근본적인 차이를 유발한 세계상과 이들의 대응이 지니는 정치ㆍ사회적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를 구명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설국열차’는 열차 밖이라는 빙하 공간으로의 이동 제한뿐만 아니라 칸으로 구획된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을 제한ㆍ금지하는 폐쇄적 정치공간이다. 이곳에서의 ‘공간의 단절성’과 ‘전진 불가능성’은 시스템의 질서와 균형 유지를 위한 대의명분일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서는 폭력과 학살마저 정당화한다. 열차의 꼬리칸 탑승객은 노동에서조차 배제된 잉여적 존재이자 열차라는 세계의 안녕을 위한 필요재와 폐기물 사이를 표류하는 존재이다. 인간성 자체를 부인당한 꼬리칸 탑승객은 폭력적인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폭력으로 대응한다. 따라서 거대시스템의 전복이라는 이들의 폭력은 폭동이나 혁명이라는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영화 은 거대 시스템의 이미지를 지우고 대신 영화적 세계를 탈주하는 개인으로 채운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불평등은 사회나 국가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환된다. 이 세계에도 와 마찬가지로 잉여적인 인물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에게는 계층 이동이 차단되어 있다. 은 ‘계단’과 ‘비’라는 수직적 이미지 및 페디스털 다운 쇼트(pedestal down shot)를 통해 상승 불가능성을 보여준다. 무한 경쟁과 능력주의에 내던져진 이들은 결국 생존을 위한 동류 간의 폭력과 상위 계층에 대한 적대적 폭력으로 대응하며, 그들의 대응은 범죄가 되고 만다. 이처럼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양극화된 세계에서 불온한 존재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잉여적인 존재의 폭력이라는 대응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더불어 그들을 불온한 존재로 전락시키고 폭력으로 대응하도록 한 세계상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봉준호가 질문하는 것은 평등 유토피아의 건설이나 신봉의 가능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영화를 통해 상생의 방법으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충분성에 대해 재고할 필요성을 발견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