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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石齋) 서병오(1862-1936)는 시, 서예, 그림에 모두 능했던 삼절(三絶)의 서화가이다. 한 사람이 세 가지 예술을 다 잘한 시서화 삼절에 대한 담론은 예술 재능의 겸비나 시서화일률(詩書畵一律)이라는 문인 예술론의 측면에서 주로 이루어졌고, 삼절의 재능이 한 화면 위에 구현된 구체적 작품에 대한 주목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고, 그림의 내용과 그릴 당시의 상황에 부합하는 제화시(題畵詩)를 지어 그붓으로 바로 그림 위에 화제(畵題)로 써 넣은 그림은 시인이자 서예가, 화가인 삼절 예술가의 대단한 권능이 발휘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시를 활용하는 대신 제화시를 화가 자신이 창작해 써넣는 것이 이러한 작품의 관건이 된다. 근대기 문인화가인 서병오의 그림에서 제화시를 창작해 화제로 쓴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병오의 그림 300여 점을 조사하여 제화시를 확인해 본 결과 그가 제화시를 창작한 그림은 15점에 불과했다. 서병오가 상당히 많은 시, 서예, 그림을 남겼음에도 제화시를 창작한 그림이 매우 적다는 사실은 그만큼 특별한 경우에만 제화시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제화시를 창작한 그림은 평소의 일반적 관례를 깰 만한 특정한 계기와 즉흥시 창작력이 만나 이루어진 작품인 것이다. 창작 제화시가 있는 그림에 대한 이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 질 수 있겠으나 이 연구는 이러한 희소성에 주목하여 제화시의 창작 계기를 중심으로 분류하여 이해해 본 것이다. 서병오의 제화시 창작 계기는 네 부류로 나누어진다. 서병오는 과거를 보아 진사에 급제한 유학 지식인 출신이다. 시서화를 즐기며 자적(自適)하는 문인의 심정이 나타나 있기도 하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만남을 기념하는 교유의 산물로 제작되기도 했다. 기생 관련 창작 제화시 그림은 각별한 기념물로서 시서화를 이해하는 기생이 많이 활동한 식민지 근대기의 상황과 풍류를 좋아한 그의 기질이 결합되어 나타났다. 근대기는 일본인들의 영향으로 서화의 상품화가 크게 촉진된 시기이다. 서병오의 창작 제화시그림은 서화 애호층이 두터웠던 대구에서 차별적 상품이라는 경제적 효용을 위해서도 제작되었다. 서병오가 제화시를 창작한 그림은 화가이자 서예가이며, 시인인 그의 역량이 한 화폭에 결합된 독특한 작품으로 그의 문인 서화가로서의 정체성이 나타나 있기도 하고, 그가 만났던 남녀 인물들과 교유의 산물이기도 하며, 차별적 가치를 가진 상품이기도 하다는 다양한 층위를 가진다. 서병오의 창작 제화시 그림은 자작시까지 지어 그림 위에 써 넣음으로서 그림을 그린 뜻을 더욱 의미 깊게 할 만 한 매우 사적인 특정한 계기를 잘 활용한 결과물이다. 동시에 작품으로서 서병오의 창작 제화시 그림은 서병오 고유의 예술적 개성을 통해 시와 그림이 의미와 이미지로 서로 호응하고, 그림과 글씨가 같은 필성(筆性)으로 어울리며 시서화가 융합한 화면을 통해 각별한 예술적 공감을 이끌어낸다. |